2013년 1월 22일 화요일

[야설] 러브호텔 7

일곱째 이야기: 어느 제비족의 말로

"방 있습니까?"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어느 토요일이었다. 아직은 손님이 뜸한 초저녁,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여관 불야성의 문을 밀치며 들어섰다.
"예, 그럼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손님?"
종업원 진수의 안내를 받아 객실로 향하는 사내는 훤칠한 키에 검정색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미남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 팔짱을 낀
여자는 저녁인데도 검정색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작은 키에 뚱뚱한 몸집을 흔들며 걷고 있었다. 술이 기분 좋게 취한 남녀는 객실 앞에 이르러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복도에 기대어 부둥켜안고 입맞춤을 했다.
"요금이 얼마죠?"
진수가 방 안내를 마치자 여인을 부축하던 남자가 눈짓을 해 보이며 물었다. 가만히 보니 술에 취한 것은 여자만인 듯 했다.
"숙박료가 삼만오천원입니다."
사내는 주머니에서 빳빳한 만원 짜리 네 장을 꺼내어 진수 앞으로 내밀었다.
"잔돈은 됐습니다. 문이나 꼭 잠가주세요?"
"예, 걱정 마시고 편히 주무세요."
오천 원의 팁을 확인한 진수는 이게 왠 떡이냐 싶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자정이 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여자를 놓아두고 밖으로
나갔던 그 사내가 한 시간쯤 지나서 역시 또 다른 중년 부인 하나를 데리고 문을 밀치며 나타난 것이다.
"아저씨, 방 하나 주세요?"
"........."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진수는 잠시 망설였다. 생김새로 보아서는 틀림없는 아까의 그 남자 였지만 다른 여자를 데리고 이곳에 올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쌍둥이 일지도 모른다.
"예? 예..... 예..."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진수가 정신을 차리고 엘리베이터의 칠층 버튼을 눌렀다. 칠층의 빈방으로 손님을 안내하기 위해서 였다. 그때였다. 여인 몰래
눈을 찡긋 해 보인 사내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 순간, 진수는 그가 오층으로 방을 원하고 있음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진수는 아까 그 남자가 얻었던 객실 바로 옆 호실에 또다시 그 손님을 안내했다. 객실을 확인한 사내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번에도 사만 원의 돈을 말없이 내밀었다.
'별 이상한 사람도 다 있군. 두 여자씩이나 데리고 들어와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프런트 데스크로 내려온 진수는 의아해 하며 오층 복도를 비치고 있는 보안용 CC카메라에 눈을 고정시켰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남자는
다시 방을 빠져 나와 처음의 여자가 있는 방으로 옮겨갔다. 정말로 그 남자는 두방을 오가며 두 여인과 정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쳇! 자식, 재주도 좋아. 누군 나이 서른이 넘도록 여자가 없어 장가도 못 가고 이 모양 이 꼴인데 누군 하룻저녁에 두 여자를 품고
자다니.... 에잇 더러워라..."
프런트를 보던 나이 서른의 노총각 성일은 열이 받은 양 담배를 꺼내 피워 대며 투덜거렸다.
"걱정하지마, 형! 내일 저 남자 일어나면 사부님으로 모시고 한번 비결을 물어 보면 될 것 아냐? 걱정은 무슨..."
안내를 맡은 진수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래야 할 것 같군. 무슨 용빼는 재주라도 있는지..."
그러나 이상한 일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새벽 네시쯤 되어 종업원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잠을 쫓고 있을 무렵 그 사내는 태연히 밖으로
나가더니 아침이 다 되어 이번에는 서른쯤 되어 보이는 여자 하나를 데리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어어.. 종업원들이 놀라 눈을
꿈벅거리며 바라보자 사내는 태연하게 말했다.
"방 하나 주세요"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대답을 마친 진수는 이번에는 말 안해도 알겠다는 듯 사내를 데리고 오층으로 향하였다.
"응... 자기야, 춥다... 얼른 들어가자....."
사내에게 착 달라붙은 여인은 연신 끈적끈적한 신음을 내뱉으며 독한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아까의 방 옆으로 객실을 마련해 주자 그는 이번에도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사만 원을 진수에게 건넸다. 별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는 생각을 하며 진수는 프런트로 내려와 의자에 몸을 뉘였다. 그렇게
얼마 후, 세번째 여인의 방에서 한시간을 보낸 남자는 다시 두번째 여인의 방으로 그리고 첫번째 여인의 방으로 각각 한시간 정도씩을 머물고는 아침
아홉 시가 되어서 세번째 여인의 방으로 들어간 후 프런트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해 하며 전화를 받은 것은 성일 이었다.
"다른 방에서 말이오. 나 찾는 전화를 하면 일이 있어 아침 일찍 나갔다고 좀 전해 주시오. 다음에 연락한다고 하드라고 말이오. 부탁합니다."
"예, 걱정하지 마시고 푹 주무세요."
남자는 몹시 피곤해 지친 음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하룻밤에 세 여인이나 탐을 했으니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스러운 일이었다.
그 토요일, 그렇게 첫 테이프를 끊은 남자는 이후에도 종종 모텔 불야성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상했던 일은 한번 온 여자와는 절대로 두번 다시
여관에 오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남자는 그 방면으로 상당한 고수의 실력을 가지고 일을 벌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하기를 육개월 여, 어언 단골 손님이 되어 버린 그가 어느날부터인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때를 같이하여 하루에 한두명씩 잘 차려 입은
부인들이 들어와 그 남자의 종적을 묻는 일도 잦아졌다. 전에도 간혹 그런 일들이 있었으나 사내에게서 적지 않은 팁을 챙긴 종업원들이 모른다고
잡아 땐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사라지고부터 유독 그런 발길들이 잦아졌다. 심지어는 형사들까지 나와서 탐문 수사를
벌여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종업원들 사이에서 아쉬움과 궁금증으로 그 남자가 잊혀져 가던 어느 날, 누군가가 사들고 들어온 연애 잡지의 한켠에
그 남자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 현대판 변강쇠 같은 남자의 베일이 낱낱이 벗겨졌다. 세간에 알려진 남자의 이름은 박 아무개. 그는
출소한지 일년이 체 못된 전과 10범의 전문 사기꾼이었다. 형을 받고 이년만에 만기 출소한 그는 또다시 손을 씻지 못하고 이번에는 잠실과 천호동
주변의 카바레를 돌며 교포2세 사업가를 사칭, 수려한 용모와 세련된 말솜씨로 부녀자들을 홀리고 돈과 몸을 갈취 해왔던 것이다.
최근에 우리 나라는 계속되는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인하여 하룻밤에 한 남자가 한 여자 데리고 자기도 힘들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그는 하룻밤에도 건수가 생기면 두명 세명의 여자도 마다 않고 기쁨조를 운용하는 북한의 김일성 부자나 삼천궁녀를 두었던 백제 의자왕 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으니 가히 기가 찰 노릇이다. 기실 그의 목적은 여자들의 몸이 아닌 그녀 [라이브카지노 asas7.com]들이 지녔던 돈이나 값나가는 물건이었겠지만 말이다. 번듯한
말투에 놀아난 여자들이 가진 것을 모두 빼 주고 덤으로 넘겨주는 몸조차 마다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욕심도 많았던 것 같다. 더군다나 그가 꼬리를
잡힌 것은 여인들의 돈이나 금품을 갈취해서가 아니라 그를 한 번 만났던 여자들이 다시 만나 주지 않는 데에 앙심을 품고 신고를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명단이 밝혀진 여인들은 대부분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하여간에 이러한 제비족
유형의 범죄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데에는 분별없는 여인들의 행실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상대가 돈 있고 번듯해 보이면 앞
뒤 가리지도 않고 줄것 안줄것 다 주어 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가정과 자식들까지도 내팽개치는 것이 현실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모든 것이
더럽혀지고 도덕이 무너진 다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몸의 때는 물로 씻을 수 있을지언정 양심의 더러운 때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차가운 감방 안에 누워 제비족 사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결코 그 시절이 화려했다고 생각진
않을 것이다. 지금, 당신은? 혹은 당신의 주변은 모두 안녕 하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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