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2일 화요일

[야설] 러브호텔 6

여섯째 이야기: 잠복 근무

연일 계속되는 도둑과의 싸움으로 인하여 모텔 불야성의 종업원들은 지칠대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철통같이 순찰을 돌고 객실
점검을 해도 얼굴을 모르는 도둑은 요 며칠 사이 계속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손님들의 방을 털어 가곤 했던 것이다. 손님들이 술에 취하여 객실
문을 열어 놓고 자다가 가끔 도둑을 맞는 일이 있긴 했었지만 일년에 한두번 어쩌다가 있는 일이었지 요즘처럼 자주 발생하지는 않았었다. 최근 한달
여를 기점으로 하여 근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어김없이 손님들의 방이 털리곤 하자 사장은 드디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손님들에게 일일이 귀중품은
프런트에 맡기게끔 하였고 문을 걸고 잠을 자도록 유도하였다. 그리고 밤에는 전 종업원이 교대로 순찰을 돌고 몽둥이를 들고 지키게 했지만 모든
것이 헛수고 였다. 범인은 귀신처럼 문을 따고 손님들의 지갑을 훔쳤고 급기야 조사하던 형사들은 이를 내부의 소행으로 단정 애매한 종업원들만
조사를 벌이며 의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종업원들은 오해를 풀고 범인도 잡기 위해 사장에게 CC-TV와 카메라를 설치하자고 건의를 하였지만
구두쇠 사장은 돈 드는 것이 싫어 그것을 묵살하고 형사들과 한편이 되어 오히려 종업원들을 물갈이 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한없이
평화스러워 보였지만 그렇게 차가운 전운이 감돌고 있는 모텔 불야성에 지방에서 서울로 범인 검거차 출장 왔던 박형사가 들어선 것은 자정이 조금
못된 시간이었다.
"방 하나 있습니까? 피곤해서 잠 좀 자야겠습니다."
유도로 딱 벌어진 어깨에 서른을 갓 넘긴 박형사는 몹시 지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범인을 잡기 위해 며칠째 잠복 근무를 하다가 허탕을 치고
내일 첫차로 일찌감치 본부로 내려오라는 명령을 받고 얼마 안되는 수사비를 쪼개어 여관을 찾은 터였다. 범인의 집 앞 벽돌 담아래서 삼일 밤낮을
쪼그리고 보낸 터라 뜨거운 목욕과 따스한 잠자리가 간절했다.
"저... 혼자 주무실 겁니까?"
박형사를 위 아래로 예리하게 흩어 보던 종업원 성일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 안 그래도 도둑 때문에 긴장되던 터에 남자 혼자 오는 손님은
무조건 경계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놈들아! 여자 남자가 여관에 연애하러 와서 할일 없이 남의 방을 털겠어. 이건 필시 남자 혼자 오는 놈의 소행 일거야. 오해받기 싫으면
잡아! 못 잡으면 너희들 소행으로 알겠어."
얼마 전까지 악다귀를 늘어놓다가 퇴근을 한 사장의 말도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도둑은 필시 남자일 것이다. 그리고 도둑이 외부에서 침입 하리란
법만은 없었다. 손님으로 가장해서 방을 잡고 기다렸다가 모두가 잠든 새벽녘에 살며시 일어나 다른 방들을 따고 지갑을 훔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왜, 남자 혼자 자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피곤해 죽겠으니 어서 방이나 하나 줘 봅시다."
종업원의 말이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박형사는 참기로 했다. 어서 따근따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뜻은 아니구요. 혹시 여자 손님 오시면 안내를 해 드려야 하니까, 헤헤... 해서 물어 본 겁니다."
이상한 예감을 억누르며 성일은 미스터 조를 불렀다.
"미스터 조? 손님 오셨으니 방 좀 하나 안내해 드리세요."
"예, 이쪽으로 오시죠. 침대로 드릴까요? 온돌로 드릴까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버튼을 누르며 진수가 물었다.
"혼자 잘건대 침대는 뭐합니까. 따듯한 온돌로 하나 주세요. 일자릴 구하느라 온종일 돌아 다녔더니 피곤하군요."
박형사는 짐짓 거짓말을 했다. 정말로 그의 얼굴은 피곤으로 가득해 보였다.
"어디, 이상한 낌새는 없던가. 미스터 조?"
진수가 안내를 하고 내려오자 프런트를 보던 성일이 성급히 물었다.
"별다르게 이상한 점은 없던데요. 그 나이에 캐주얼복 운동화 차림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자꾸 피곤하다고 하는 것이 이상하긴 하기도
하고... ..."
"틀림없어. 뭔가 있다구. 이래봐도 내가 프런트 경력 10년째야. 척보면 손님들의 마음쯤은 읽을 수가 있지. 지금까지 예감이 빗나간 적은
없었어. 아무튼 졸지 말고 신경 써서 보자구.이번에 한 번 더 도둑을 맞았다 간 우리 목이 성치 않을 거야."
"제길... 무비카메라 한대 달면 해결될 문제인데 직원들끼리 서로 의심이나 하고 이 기회에 직업을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봐! 그건 둘째 문제야. 어쨌든 도둑놈을 빨리 잡아야지. 참, 그 방 말야. 남자 혼자 올라간 방. 문에 표시를 해 두지 그래. 문을 열고
다른 방을 돌아다니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표가 나게끔. 문틈에 성냥 한개를 끼워 놓으라구. 문을 열면 밑으로 떨어질 테니 표가 나겠지."
"참, 그거 좋은 아이디어군요."
성일은 오늘은 왠지 그 동안 속을 썩이던 도둑이 잡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돈을 변상해 주고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그 동안의 일들이
생각나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나 둘씩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드디어 운명의 밤이 깊었다. 새벽 다섯 시, 마지막으로 객실 점검을
하고 진수가 프런트로 돌아왔을 때 성일은 피곤했던지 전화 교환대에 코를 박고 잠에 빠져 있었다.
'쯧쯧. 저러니 도둑이 와도 털릴 수밖에 없지.'
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를 곁에 내려놓고 혀를 끌끌 차던 진수도 이내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졸기 시작했다. 객실
문도 모두 굳게 닫아져 있었고 여관 후문 쪽에 있는 비상구도 아예 닫아 걸어버렸다. 화재나 비상시를 대비하여 열어 놓아야 할 비상구 였지만 밤에
잠 안자고 소방서에서 소방 검열을 나올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모텔 맨 위층에 위치한 7층 709호실의 문이 열리고 복면을 한 두 그림자가 소리 없이 복도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709호실에 일찌감치 손님으로 가장하여 방을 잡았던 인물들이었다. 한 명이 손짓을 하자 다른 한 명이 재빠르게 계단을 이용하여 1층에 있는
프런트로 달려 내려갔다.
"그래, 어때? 깨어 있나?"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있어요. 탁자를 두드려도 모르더군요."
"자식들! 그러면서 무슨 도둑을 잡겠다고..."
어둠 속의 두 그림자는 킬킬거리면서 행동 개시를 했다. 그들의 손에는 날카롭고 조잡한 모양의 만능키가 들려져 있었다. 두 그림자는 살며시 그러나
능숙한 폼으로 7층부터 객실의 이중 안전고리가 걸리지 않은 방을 중심으로 방을 열고 잠에 떨어져 있는 손님들의 지갑만을 털면서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딸각-"
한편, 자정 무렵부터 잠에 취하여 정신없이 잠에 빠졌던 박형사는 새벽이 되어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 마악 잠을 청하는 순간 밖에서
들려 오는 이상한 소리에 본능적인 감각으로 정신을 차리고 숨을 죽였다.
"딸각-"
잠시 후 두어번의 문 비트는 소리와 함께 살며시 문이 열리며 검은 물체 하나가 소리 없이 방 안으로 스며들어 왔다. 전혀 소리가 없이 그 모습은
마치 그림자처럼 다가왔다. 박형사는 순간 도둑임을 확신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쳤겠지만 박형사는 동물적인 감각과
오랜 수사 경험에서 얻은 베테랑다운 솜씨로 오히려 코를 골아 가며 자는 시늉을 했다. 물론 작게 실눈을 뜨고 도둑의 행동을 살피고 있었지만
어두워서 도둑은 방안의 사람이 자고 있는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증거를 포착해야 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지 잠시 방안의 동태를 살피던 도둑이
살며시 박형사의 청바지 주머니를 열고 지갑을 꺼내었다.
"꼼짝 마!"
다음 순간, 범인을 제압하기 위한 날카로운 외침 소리와 함께 박형사의 곰 같은 육중한 몸이 도둑의 몸을 덮쳤다. 놀란 도둑의 비명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격투가 이어졌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박형사가 어둠 속에서 날렵하게 수갑을 꺼내 도둑의 손에 채우고 불을 켰을 때 박형사의
팔에서도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도둑이 휘두른 나이프에 스친 듯했다.
"앗-"
도둑의 두건을 벗긴 박형사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도둑은 뜻밖에도 갓 이십대 초반의 아리따운 아가씨 였던 것이다. 손님으로 왔던 박형사가 어여쁜
아가씨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프런트로 내려오자 성일과 진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앗!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분은 우리 집 단골 손님인대요."
"어떻게 되긴? 빨리 경찰을 불러요. 도둑이 다행이 내 방으로 들어왔기 망정이지. 큰일날뻔했지 뭡니까."
자기의 애인이 잡히자 그와 같이 있던 그녀 [라이브카지노 asas7.com]의 남자 친구도 순순히 자수를 했고 얼마 후 사건의 전모는 밝혀 질 수 있었다. 즉 그들은 애인 사이로
공고를 졸업한 남자 친구가 열쇠 따기에 남다른 제주가 있던 점을 이용하여 애인 사이로 가장 여관에 든 후 만능키로 닫혀진 객실 문을 열고 돈을
털어 왔던 것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온 사장이 박형사를 보고 고개를 구십도로 숙여 인사를 건넸다.
"고맙긴요. 제 일인 걸요. 그나저나 쉬는 시간까지 잠복근무의 연장이니 웃어야 겠지요. 편히 발 뻗고 쉴 날이 없구려."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박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모텔 불야성에서는 더 이상 도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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