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2일 화요일

[야설] 러브호텔 4

넷째 이야기: 립스틱으로 쓴 유서

사람들이 자살을 할 때 그 죽음의 순간을 택하는 장소도 참으로 다양하다. 멀리 여행을 떠나서 낯선 여행지의 강변이나 호텔 방, 혹은 유람선의
달리는 뱃전 위에서 그 생에 마감의 순간을 가질 수도 있고, 더러는 집에서나 아니면 자신이 처한 가장 어려운 환경의 한 가운데가 될 수도 있다.
그 여러 유형의 죽음 가운데 낯설은 여관방에서 생의 죽음을 택한 한 여인의 소설처럼 슬픈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잠실 종합운동장을 지나
한 정거장을 더 내려가면 신천 전철역이 나오고 그 뒤로는 최근 요 몇년 사이 젊은이들의 거리가 되어 버린 화려한 유흥가 골목이 펼쳐 있다. 이
곳은 또한 인근의 야구장과 한강 시민공원 롯데월드 등이 인접해 있고 편리한 교통 여건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일명 뚜벅이거리라고
불리우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유흥 시설들이 즐비하다 보면 시내 어디를 가도 공통적인 것이기는 하겠지만 한 블록쯤 떨어진 거리에는
반드시 화려한 네온 등들을 앞세운 러브호텔의 불빛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기 마련이다. 이 곳도 마찬가지여서 각종 술집과 포장마차 노래방
단란주점등이 늘어선 거리를 걸어 올라가다 보면 그 길이 끝나는 지점을 기점으로하여 여관들이 늘어서 있다. 마치 '취하고 지친 그대들을
기다렸노라' 하고 말하듯 사랑하는 연인들이 기분 좋게 한 잔씩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골목길을 나서면 자연스레 여관이 그 앞을
가로막는다.
그 어느 늦은 가을, 가을비가 을씨년스럽게 흩뿌리던 날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영업 시간이 끝난 술집의 손님들이 하나 둘씩 가게문을 나와
삼삼오오 집으로 혹은 포장마차로 흩어질 무렵 술에 잔뜩 취한 연인 한 쌍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흐느적거리며 골목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여인은 검정색 투피스 차림에 이십대 초반의 청순하게 생긴 얼굴이었고 그녀 [라이브카지노 asas7.com]의 팔을 부축한 남자는 큰 키에 귀공자 풍의
얼굴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잔씩 걸친 술로 인하여 취해 있었기는 마찬가지 였고 어느 누구도 두 젊은이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인은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기는 했지만 제법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남자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영준씨! 제발... 절... 절 떠나지 마세요? 네, 부탁이에요.... 흐흑..."
"미혜... 어쩔 수 없잖아... 부모님의 뜻인걸... 그리고 날 이젠 잊어 줘... 넌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흥, 영준씨가 떠나면 전 차라리 죽어 버릴 거예요.... 영준씨는 부모님의 뜻이라 하지만 사실은... 저를... 사랑하지 않고 있어요.
그렇죠?"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난 누구보다도 미혤 사랑했다구.. 다만 지금은 부모님의 뜻을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지.... 난 그분들의
희망이야."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걷던 두 남녀는 잠시 후, '파라다이스'라고 써진 모텔의 현관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비가 많이 오나 보군요?"
두 남녀를 아래위로 흩어 보던 종업원 미스터 박은 형식적인 말을 건네며 엘리베이터에 그들을 태웠다.
"아저씨! 몇 층입니까?"
"예, 6층 607호실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꼭 부둥켜안은 남녀는 꽤 피곤한 얼굴이었다. 잠시 후 방으로 그들을 안내한 미스터 박은 별 생각없이 요금을 받은 후 방문을 닫아 주고 프런트로
내려왔다. 그리고 긴 밤이 흘렀다. 다음 날 오전 12시, 통상 이때쯤이면 숙박 업소의 대부분은 그때까지도 방을 비우지 않은 손님들에 한하여
일일이 전화로 체크아웃을 시킨다. 청소를 시작하고 새로이 들어 올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함에서였다. 일일이 체크판을 들고 나가지 않은 손님들을
체크하던 미스터 박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하네. 607호 말이야. 안에 손님이 분명히 있는데 전화를 안 받는단 말씀이야."
"잠에 취해서 그렇겠지. 다시 한 번 전화를 해 보세요."
걸레질을 하던 프런트 케쉬어 미스 리가 거들었다.
"글세.. 어제 저녁에 술에 취해서 들어오기는 했지만 지금쯤이면 술이 깨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이상하네."
"문을 마스터키로 따 보면 되잖아요?"
"에이, 누가 그걸 모르나. 손님 방 함부로 열었다가는 큰일 나니까 하는 소리지. 가뜩이나 술 취해서 믈건 잃어버리면 종업원 소행이라고 우기고
신고하는 판인데... "
"훗훗,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요."
"에잇! 더러워서. 빨리 돈 벌어서 뭐라고 차리던가 해야지. 그나저나 607호실은 문제군. 문을 열어 보는 수밖에 없겠는데. 요즘 젊은것들은
문제야. 대낮인데 출근도 안 하나."
미스터 박은 투덜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잠시후 607호실 앞에 이른 그는 다시 한 번 소리내어 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젠장, 전쟁이 일어나도 모를 판이군."
조심스레 마스터키로 객실 문을 연 미스터 박은 손님이 깰 까봐 조심하면서 마치 영화 속의 미 정보국 CIA요원이 된 기분으로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커튼이 드리워진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다만 문 입구에 여자 구두 한 켤레가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으나 손님은 없는 듯 했다.
"젠장, 여기가 무슨 쓰레기장인줄 아나. 줄줄이 버리고 가게스리. 그나저나 괜히 놀랬네."
완전히 손님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투덜거리며 커튼을 열어 젖혔다. 여관에 와서 새로 산 신발이나 옷가지들을 갈아입고 헌 것들은 버리고 가는
경우는 그전에도 종종 있던 터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조금씩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앗,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지?"
갑자기 풍기는 역한 비릿내에 깜짝 놀란 미스터 박은 조심스레 욕실문을 열었다.
"아악"
다음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닫혀진 욕실 안에는 참으로 처참한 풍경이 벌어져 있었다. 긴 머리를 어깨에까지 늘어트린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동맥을 절단한 채 욕조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음인지 물
속에서는 아직도 더운 피가 뭉클거리며 솟아나고 있었다.
"여... 여보세요..."
정신을 차린 미스터 박이 달려들어 여인의 몸을 흔들었으나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한평 남짓한 욕조 주변에는 여인이 밤새 피우다 만
담배꽁초들과 손톱 소재용 화장칼 하나가 널려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타일 위에 걸려 있던 욕실용 거울에는 그녀 [라이브카지노 asas7.com]가 마지막으로 망설임 속에 썼을
법한 몇 자의 글씨가 빨간 매니큐어로 흔들리듯 쓰여져 있었다.
--어머님! 아버님! 용서하세요. 불효자는 먼저 떠납니다...
얼마 후 경찰이 달려오고 사건의 전모는 밝혀졌다. 어제 밤에 같이 여관에 들어 왔던 남자와 여인은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것도 죽고는 못 살
정도로. 그렇지만 사랑만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벽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즉 남자는 유명한 대기업의 외동아들이었고 여인은 평범한 가정의
대학생이었던 것이다.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는 부모는 마침 다른 기업의 외동딸과 자기 아들이 맺어지길 원하였고 자기 아들이 평범한 여인과
사귀고 있음을 눈치 채고는 그 대기업의 외동딸이 유학하고 있는 영국으로 유학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별의 마지막 날, 그 남자는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비행기에 올랐으리라. 부모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사랑했던 남자가 다른 여인의
품으로 떠나버린 아침, 그 여인은 세상을 절망하며 동맥을 끊었으리라. 참으로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하지만 소설 속의
창작된 이야기가 어차피 현실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모티브를 두고 있기에 더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 여인의 시신이야 화장이
되고 곧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겠지만 그 사랑의 마음이 어떠했기에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전해들은
순간부터 줄곧 필자는 가슴 아픈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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