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9일 토요일

[야설] 야간열차에서 만난 여인 - 상편


야간열차에서 만난 여인


“덜거덕, 덜거덕!! 빠아아앙~~” 간간히 기적소리를 울려대며 목적지를 향해 미끄러지듯 달리는 야간열차,

시계를 보니 어느새 자정이 넘어 1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불과 한 시간 전만해도 몇몇 사람들로 인해 열차 안이 시끌시끌했지만, 그마저 하나 둘씩 잠이 들면서 이젠 주위가 조용하다.
평소 같으면 나 역시 벌써 잠이 들었을 시간 아닌가?
하지만 오늘따라 내 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말똥거린다.
좀 이른 계절이라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지 열차 안이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난 뻐근해진 몸을 뒤틀며 아무 생각 없이 창가 쪽 슬쩍 눈을 돌려보았다.
순간, 옆자리에 앉은 여인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서른을 갓 넘긴 듯한 그녀는 연회색 정장차림을 한 그녀는 짧은 치마 때문에 그런지 트렌치코트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이 그렇듯, 역시 잠이 들었는지 눈을 꼭 감은 그녀는 조금의 미동도 없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이 시선이 머문다.

감겨진 눈 사이로 삐져 나온 속눈썹이 어쩜 저리도 예뻐 보일까? 게다가 오똑한 콧날과 진하지 않은 화장 때문에 그런지, 그녀의 얼굴은 더욱 청순해 보였다.
그녀의 몸은 모델들처럼 큰 편도 아니었다.
그녀는 왠지 내가 보호해 주고 싶을 정도로 조금 왜소해 보이는 체형이었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 이왕이면 나와 같은 곳에 내렸으면 좋을 텐데..’
난 그녀를 보며 막연한 기대를 가져본다.
처음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을 때만해도 난 주위를 의식하느라 그녀를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그녀는 내가 볼 때마다 새삼스럽고 신비감을 주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그녀가 불편한지 몸을 뒤척였다.
“으으음.. 아흠..”
순간, 그녀가 덮고 있던 트렌치코트가 조금 아래로 흘러내린다.
멍하니 그녀를 보고 있던 나는 마치 도둑질을 하다가 들키기나 한 것처럼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다시 눈을 돌렸을 땐, 발그스름한 립스틱이 연하게 칠해진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난 그 살짝 열린 입술을 보며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섹시하고 아름다운 입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입술에 머물렀던 내 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자켓 안에 입은 하얀 블라우스가 보인다.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었는데, 그녀가 몸을 뒤척이면서 드러난 것이다.
블라우스엔 단추 두 개가 풀려져 있었다.

“으흡!! 으으음..”
순간 내입에서는 나지막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앙상해 보이는 쇄골 아래로 봉긋한 가슴살이 살짝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보일 듯 말듯한 젖살이 나를 무척 긴장시키는 것 같다.
술을 마실 때면, 술집여자들의 가슴을 모두 드러내 놓고 내 맘대로 주무르던 내가 아닌가? 하지만, 그땐 한번도 지금처럼 긴장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내 옆에 앉은 이 여인의 살짝 드러난 살결은, 내가 보는 것조차 가슴이 두근거리고 사뭇 떨린다.
그녀의 살결은 갓 짜낸 우유처럼 뽀얀 게, 마치 손을 대면 그냥 미끄러져버릴 것처럼 무척 매끄러워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의 뺨에 내 얼굴을 비벼,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숨결을 느끼고 싶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나 할까?
난 또 다른 누군가가 나의 음흉한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것 같아, 고개는커녕 가자미처럼 옆으로 돌아가는 눈동자조차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다.

난 그녀를 보며 영화 “불루라군” 의 주인공들처럼 이 열차 안엔 그녀와 나, 단둘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 없는 상상을 한다.
“으으음..”
난 다시 몸을 꿈지럭거리며 그녀를 슬쩍 쳐다봤다.
그녀의 이마가 번들거린다.
아마 후덥지근한 열차 안 온도 때문에 땀이 배어 나온 모양이다.
난 얼른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아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잠에 취한 그녀가 답답했던지 가리고 있던 트렌치코트를 슬며시 끌어내려 옆으로 밀어냈다.
내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처음으로 그녀의 치마를 본 것이다.
그녀는 조금 짧은 듯한 치마를 입고 있었으며, 그 짧은 치마는 조금 말려 올라가 그녀의 허벅지를 거의 반쯤이나 드러나게 했다.
비록 스타킹을 신고 있었지만, 스타킹 사이로 아련히 비춰지는 그녀의 허벅지 살, 역시 무척 매끄러워 보였다.

“으으음..”
내 입에선 나지막하면서도 안타까운 탄성이 한 차례 쏟아져 나왔다.
허벅지가 전체적인 그녀의 체형에 비해 조금은 튼실해 보인다.
꼬옥 보듬어 안고, 토닥거려 내 품에서 잠들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난 음흉한 생각을 하며 잠든 사람처럼 눈을 슬쩍 감았다.
그리고 은근슬쩍 손을 아래로 내렸다.

사실 눈을 감았다고는 하나, 난 여전히 실눈을 뜨고 주위를 살핀다.
내 손은 정확히 그녀의 허벅지에 닿았다.
이때까지 두근거리던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비록 내 손등에 닿은 그녀의 허벅지였지만 그 느낌만큼은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처럼 매끄럽고 탄력 있는 허벅지를 느껴본 적이 있을까? 할 정도였다.

“흐으읍!! 으음..”
내 입에서는 금세 탄성 같은 신음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난 몸이 점점 경직되어 가고 있는 걸 느꼈다.
그녀는 아마 잠이 들어 지금의 이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난 조심스럽게,
그리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 듯, 손을 움직여 그녀의 허벅지를 느꼈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페티쉬 마니아도 아닌데 그녀의 스타킹에 이렇게 미쳐가는 내 자신이 신기할 따름이다.
난 그녀의 허벅지를 조심스럽게 느끼며 여전히 실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잠든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서인지 가끔씩 지나다니던 판매원들의 발길도 끊겼고, 간간히 승무원들만 지나다닐 뿐, 열차 안에서 사람의 움직임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난 손등으로만 느끼던 그녀의 허벅지에 내 손바닥을 대보기 위해 손의 방향을 슬며시 틀었다.
그러면서 그녀를 힐금 쳐다보는 순간, 난 누군가가 커다란 망치로 내 머리를 내려 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허헛!! 으흐흡!!”
틀림없이 눈을 감고 잠이 들었어야 할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숨고싶은 마음에, 얼른 눈을 질끈 감으며 그녀의 허벅지에서 손을 뗐다.

‘그녀가 눈치 챘을까? 아냐, 그렇다면 그 동안 가만히 있을 리 없을 거야!’
난 가슴을 조리며 그녀의 처분만 기다릴 뿐이었다.
눈을 뜨고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콩알만해진 내 가슴은 학교에 다닐 때, 큰 잘못을 저질러 담임선생님에게 불려갔을 때처럼 마구 뛰었다.
그러나 마냥 이렇게 눈을 감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난 조금 전처럼 살짝 실눈을 뜨고 그녀를 살폈다.
‘아니, 이럴 수가? 으으음..’
비록 실눈을 떴지만, 순간 그녀와 눈이 내 눈과 마주친다.
난 무언가에 홀린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했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으나, 그 얼굴에는 조금도 노여운 기색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얼굴에는 잔잔히 미소가 흘렀다.
난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지워지질 않는다.

“어디까지 가세요?”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이건 그녀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이미 내가 자지 않는다는 걸 다 알고 있는 그녀기에 이젠 대답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난 눈을 슬며시 뜨며 더듬거렸다.
“네에?? 저.. 저 말인가요?”
“네, 여기 다른 사람도 없잖아요.. 후후~”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저어.. 전, 태.. 태백에 볼 일이 있어서..”
정말이지 내가 여태껏 여자 앞에서 이렇게 긴장해본 적이 있을까? 할 정도로 내 목소리는 몹시 떨렸다.
“어머, 그럼 철암역에서 내리겠네요? 저도 지금 태백엘 가는데.. 그렇지 않아도 잠이 오질 않았는데.. 잘 됐네요.”
그녀는 마치 내가 잠들지 못한다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저.. 전.. 잠이.. 으으음..”
“알아요.. 아까부터 느낀 건데.. 그쪽도 저처럼 열차 안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 같더라구요”
“아.. 네에..”
잠을 자던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려던 나는 그녀의 선수에 어쩔 수 없이 그만 손을 들어야만 했다.

“어릴 때, 아빠가 광부로 계셔서, 스무 살 때까지 전 태백에서만 쭉 살았어요.”
그녀는 내가 묻지도 않았지만,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태백엔 친구들이 많겠네요?? 오늘도 아마.. 친구를 만나러 가는가 봐요?”
“아, 아녜요.. 친구는 많아도.. 으음.. 사실 태백은 제게 좋지 않은 기억들뿐이에요.”
“정말요?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데!”

이야기가 재미있다기보다 그녀의 미모에 빠져버렸던 난, 그녀의 이야기에 제법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물었다.
하지만 일순간, 난 일그러지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바로 입을 다물어야만 해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해도 못다할 것 같았던 그녀와의 이야기는 벌써 끝이 난 걸까?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그녀의 어깨너머로 차창을 보니 간간히 불빛만 스치고 지나갈 뿐, 여전히 칠흑처럼 어둡다.

한동안 입을 다물었던 그녀가 창 밖을 내다보며 독백처럼 중얼거린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으흠.. 뭐.. 뭐가요?”
“조금 전에 제가 말했던, 좋지 않았던 일들이요?”
“아아..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쪽이 괴로워하는 것 같아서..”
“으으음.. 그건 맞아요.. 하지만.. 왠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들어주시겠어요?”
“네, 저야 좋죠.. 그렇지 않아도 심심하던 참인데..”
이야길 하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창 밖만 내다볼 뿐 나와는 시선을 맞추려고 하진 않았다.

“잘 살지는 못했지만 행복했었는데, 아빠가 광산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으음.. 그때 제가 고 3이었으니까.. 열아홉 살이었죠.”
“저런!! 어린 나인데.. 그런 엄청난 일이..”
사실 밖으로는 그리 알려지지 않지만, 광산에서의 사고는 종종 일어나는 편이다.
아마 그녀의 아버지도 그 때문에 세상을 떠난 모양이었다.
“보상은 받았지만, 그 동안 진 빚을 갚으니.. 남는 게 없었나 봐요.. 으흐흠.. 아빠가 돌아가시자.. 회사에서 사택을 비우라고 하대요.”
“아니, 회사에 다니다.. 사고를 당했는데.. 사택에서 나가라고 해요? 저런 나쁜 놈들이 있나!!”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자 하는 나의 의도도 있었지만, 난 괜히 몰인정한 회사의 처신에 은근히 화가 났다.
“그런데, 다행히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아주 가깝게 지내시던 친구분이. 우리가 딱하다며, 방이 두 개 딸린 허름한 집을 하나 얻어주시더라구요.”
“오오.. 그건 다행이네요.. 정말 좋으신 분이신가 봐요?
“으흐흠.. 맞아요.. 그때까지만 해두요.”
“네에? 그때까지라니.. 그건 또 무슨??”
“흐읍!!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가 스무 번째, 생일을 맞이 할 때까지만 해도 정말 좋은 분이었죠.”
“그럼 그렇지 않다는 말인가요?”
“……”
하지만, 그녀는 거기까지 이야길 하더니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악몽을 삭히려는 듯, 눈을 지긋이 감으며 입을 다문다.
그녀는 말을 재미있게 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난 어느새 그녀의 애틋하고 절박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그 다음 내용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러나 물어보기에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 보인다.
그녀는 뜸이라도 들이듯,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스무 번째 제 생일날이었어요.”

사는 꼴이 그러다 보니, 생일선물은커녕 따뜻한 밥 한끼를 먹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라는 그녀였다.
그런데 저녁때가 되자, 그녀의 아빠친구인 덕식이 아저씨가 선물이라며 구두 한 켤레를 사 들고 그녀를 찾아왔다고 했다.
“생일 축하해!! 글고 보니.. 우리 민정이도 이젠 시집갈 나이가 다 됐네.. 하하~”
“아이.. 아저씨두.. 헤헤.. 선물, 너무 고마워요.”
“고맙긴.. 이제 민정이에겐 내가 아빠나 다름 없는데.. 하하~ 참!! 너 심부름 좀 해야겠다.”
그리고 덕식이 아저씨는 생일을 축하하는 뜻에서 술을 한잔 마셔야겠다고 그녀에게 돈을 주며 술을 사오라고 했다.
술을 사오자, 생일파티를 핑계로 한 조촐한 술자리가 벌어졌다.
물론 술은 아빠의 친구인 덕식이 아저씨가 거의 다 마셨지만, 간간히 엄마에게 술잔을 권했고, 또 가끔씩은 그녀에게도 술을 주었다.
“자.. 이제 민정이도 성인이 됐으니.. 한잔 마셔야지? 하하~”
“아이.. 난 아직!! 그럼 한잔만 마실게요..”
마지못해 그녀는 아직까지 한번도 마셔본 적이 없었던 소주를 목구멍 너머로 들이켰다.
“오오~ 잘 마시는데!! 하하.. 그래, 한잔 더 마셔!!”
그녀는 그날 아빠를 대신해주는 덕식이 아저씨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행복한 분위기에서 빈 술병은 하나 둘씩 늘어가던 술자리가 끝난 시간은 거의 열두 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아저씨가 건네주는 술잔을 마다 않고 받아 마시던 엄마는 벌써 술이 취했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몇 잔밖에 마시지 않은 그녀도 이젠 세상이 빙글빙글 돌면서 머리가 아딸딸해졌다.

“자, 이제 민정이도 자야지.. 아저씬 그만 가 볼게!”
“네, 아저씨!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저씨를 대문까지 배웅해주기가 무섭게 곧바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6월의 후덥지근한 날씨도 그렇지만, 몇 잔 마신 술기운 때문에 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른 그녀는 입고 있던 옷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겨우 팬티와 러닝만 입은 채,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선물까지 주며 생일을 축하해준 덕식이 아저씨를 생각하다가 이제 막 잠이 들려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문밖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으흐흠.. 미.. 민정아.. 아후흡!!”
그건 틀림없는 덕식이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어어.. 아저씨.. 아직 안 가셨어요?”
“으으음.. 나 좀 들어가도 되지? 아후~ 술이 너무 취해서 도저히 갈 수가 없어.. 으흐흠..”
“어머! 그래요? 그러엄.. 아 참!!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일어나 방문을 열려고 하던 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속옷만 입고 있다는 게 생각나, 옷을 막 집어 들었을 때였다.

그녀는 미처 옷을 걸치기도 전이었는데, 갑자기 방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허엇!! 아.. 아저씨!! 저.. 저어..”
“아흐흠.. 너무 마셨나 봐!! 푸흐흐..”
그녀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입으려던 옷은 그대로 놔 둔 채, 얼른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아.. 아저씨!! 자.. 잠깐만요.. 아후~”
하지만, 잔뜩 술이 취해 있던 아저씨는 벌써 방안으로 들어와버린 뒤였다.

‘아휴~ 이걸 어떡해? 으흐흠’
아무리 아빠와 다름없다고 해도 속옷차림으로 아저씨와 같이 지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아저씨가 이미 방에 들어와버렸으니,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으흐흠.. 미인정이.. 넌.. 그냥 자!! 아저씨는 여기서 조금만 자다가 갈 테니.. 으흐흠..”
아저씨는 전혀 그녀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 자리에 꼬구라져 버렸다.
‘그래! 어차피 아저씨는 술이 취했으니.. 이따가 잠들면.. 옷을 입어야지.’
사실 스무 번째의 생일, 그러니까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스물한 살인데, 그런 다 큰 처녀의 방에 남자가 들어와 같이 잔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하지만, 어릴 때부터 늘 가까이서 봐 왔고, 아빠나 다름없는 덕식이 아저씨였기에 그녀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녀가 그만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몇 잔을 마신 술기운 때문인지, 아저씨가 잠들면 옷을 입겠다던 그녀가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만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얼마가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오색 꽃들이 만발한 꽃밭에 누워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쳐져 있지 않은 알몸이다.
하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그런지 그녀에겐 전혀 수치심 같은 것이라곤 느껴지지도 않았고, 마음 또한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다.
영원히 이대로 살고만 싶은, 마치 낙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 속에 둘러싸인 자신의 알몸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수백, 아니 수천 번을 넘게 봐온 자신의 몸이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예쁘고 아름답게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아아.. 이게 정말 내 몸이란 말인가?”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매끈한 살결과 봉긋하게 솟아오른 젖가슴, 그리고 군살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도 없는 잘록한 허리가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까?
게다가 적당히 살이 오른 엉덩이는 탄력이 넘쳐 보였고, 아래로 쭉 뻗은 허벅지조차 그녀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육체에 스스로 만족스러워 하며 두 손을 젖가슴에 가져가 살며시 움켜잡았다. 손바닥 가득 잡히는 젖살 무척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넘친다.
그녀는 눈을 살며시 감으며 가슴을 덮고 있던 손에 힘을 줘봤다.
순간, 파장처럼 퍼지는 짜릿한 기운이 그녀의 몸을 감싼다.
그녀의 입에서 아련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아아..”
그건 정말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경험이자, 쾌감이었다.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자그마한 돌기가 손가락 사이를 간지럽힌다.
유두였다.
말랑거리던 유두는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점점 단단하게 굳어져가고 있었다.
그녀는 젖살을 부드럽게 주물러대다가 단단해진 유두를 살짝 꼬집듯이 잡아보았다.
“아항~ 아아앙~”
순간 온몸이 짜리리해진다.
스무 살이 되도록 남자는커녕, 자위조차 해보지 않았던 그녀는 밀려드는 쾌감에 온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입에선 금세 가쁜 숨과 함께 애틋한 신음이 쏟아져 나온다.
“아아.. 이게 바로 자위?”
그녀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손으로 가슴을 그대로 말아 쥔 채, 다른 손을 아래로 슬며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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