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2일 화요일

[야설] 러브호텔 1

첫째 이야기: 몰래 카메라 사건

"돈을 가지고 나오세요! 더도 덜도 아닌 삼백만원입니다. 반드시 당신 혼자 나와야 합니다. 만약 엉뚱한 생각을 한다거나 경찰에 신고를 하는
날에는 당신과 당신의 여비서가 주인공이 된 이 삼류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를 당신의 마누라 앞으로 보내 주겠소. 명심하세요."
전화를 끊은 진수는 괜스레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바야흐로 오랫동안 구상해 오던 사업의 첫 단추를 뀌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날 저녁, 서울역의 시계탑 밑에서 오십을 조금 넘긴 뚱뚱한 사내 하나가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사내를 지켜보던 진수는 경찰의 잠복이 없는 것을 오랫동안 확인한 후에야 천천히 그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검은 선글라스에 챙이 큰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이었다.
"이봐! 어쩌자고 이런 해괴한 짓을 하는 거야? 누구 신세 망칠 일있어? 액수도 가볍고 나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터이니 어서 그 비디오
테이프를 내 놓으시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사내가 다가오는 진수를 알아보고 서둘러 가방을 건네주며 말했다.
"액수는 틀림없겠죠?"
"그걸 말이라고 하나?"
돈 가방을 건네 받은 진수는 신문지에 감싸 놓았던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사내에게 내밀었다.
"자, 그럼..."
진수가 무어라고 말을 건네기도 전에 사내는 총총히 사라졌다. 유유히 근처의 지하 커피숍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은 진수는 가방을 열고 사내가
건네준 돈을 확인했다. 빳빳한 만원 짜리 신권 삼백장, 틀림없는 삼백만원 이었다. 진수의 입가에 잔잔히 미소가 번져 갔다. 진수에게 돈을 건네준
사내는 제법 잘 나가는 전자 회사를 운영하는 회사의 사장이었다. 그런 사내가 그의 딸 같은 나이의 어여쁜 여비서와 함께 러브호텔에 들러서 재미를
보다가 재수 없게도 진수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적나라한 둘의 정사 장면을 비디오에 찍혀 가면서.
진수가 이곳 경기도 외각의 모 유원지 근처에 있는 러브호텔에 취업을 한 것은 대략 일년 전의 일이었다. 그동안 두어 번의 사업 실패로 인해
심신은 지쳐 있었고 나이는 어언 삼십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곳에 온 이후로 그는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새로운 희망으로 일어서려는 그에게 어느 날 작은 시련이 닥쳐왔다. 전날이 어머님의 생신이었던 관계로 집엘 들렀다가 아침 일찍 출근을 했던
그는 첫 손님에게 갑작스레 뺨을 얻어맞은 것이다. 주차장으로 검정색 외제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올 때부터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참으로 싸가지 없게 생긴 어린 계집아이 하나와 문을 밀치고 들어선 사내는 다짜고짜 진수를 쳐다보며 말했었다.
"야! 깨끗하고 조용한 방 하나 줘라!"
참으로 기가 막혔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이십대 중반을 갓 넘긴 듯한 나이였다. 그런데 예사롭게 반말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물론 숙박
업소의 종업원이 술집의 웨이터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인식 때문에 어느 정도의 반말은 참을 수 있었지만 이처럼 나이도 어린 애송이 같은
손님들까지 반말을 하는 데에는 정말 화가 치밀었다. 돈푼께나 있다고 안하무인격으로 되어 가고 있는 부모 잘 만난 부류들이었다.
"얼마냐!"
객실로 안내를 하고 방값을 지불할 때에 또다시 그가 건들거렸다. 방값을 받고 돌아서던 진수가 순간 획 돌아섰다.
"손님! 들으시기에 기분 나쁘시겠지만 아무에게나 그렇게 반말하는 버릇 좀 고쳐 주세요. 듣기에 기분이 불쾌하군요."
잠시의 기분을 참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순간, 돌아서던 사내의 손바닥이 진수의 뺨으로 날아들었다. 이유는 숙녀 앞에서 무안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진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참았다. 손님과 문제가 생기면 불리한 것은 언제나 종업원이었다. 또한 업주들은 그 누구도 문제가 생겨
경찰들이 드나드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날 이후, 진수는 모두에게 톡톡히 복수를 하기로 했다. 비록 돈을 벌기 위해 꾹 참고서 일년 동안 일은 해 왔지만 팔자 좋게 러브호텔을
찾는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증오스러웠던가? 모두가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있을 벌건 대낮에 그것도 대부분 자신의 어린 딸과 같은 새파란
계집아이들을 끼고서, 보기에도 그 얼마나 역겨운 일들이었나..
며칠후, 서울 청계천 전자상가를 찾은 진수는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한 가게에서 담뱃갑 만한 크기의 최신형 소형 비디오 카메라 한대와
부속품들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자신이 일하고 있는 러브호텔로 돌아온 직후, 칠층의 제일 복도 끝쪽 객실 안 커튼 사이에 교묘히 위장을
한 후, 사온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그리고는 그 뒷편에 있는 자기 숙소의 텔레비전과 비디오로 선을 연결해 놓았다. 그러다가 돈이 있어
보이고 바람을 피우는 것이 분명한 듯한 남녀가 호텔로 들어서면 그 방으로 태연히 안내를 하고 재빠르게 숙소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고 비디오로
녹화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알몸이 찍히는 줄도 모르고 들어선 남녀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정사를 벌일 것이다. 그 첫 케이스로 걸려든 것이 모
전자 회사의 사장이었다. 그는 오십 줄의 나이에 땅딸막한 체격의 소유자였지만 스물을 갓 넘긴 여자와 온 것으로 보아서 바람을 피우는 것이 분명
하였다.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승용차 문을 열고 자동차 등록증을 꺼내어 주소와 이름을 알아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약 석달 후, 철저하게 바람을 피우고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로만 골라 약 오십 여명의 정사 장면을 비디오로 찍고 리스트를 작성한 후, 진수는
서서히 행동을 개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 그 첫 작전을 무사히 마친 것이다. 커피 한잔을 서서히 들이킨 진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숍을 빠져 나왔다. 어차피 그런 인간들은 쓰레기들이다. 돈 좀 있다고 우쭐대고 자기 자신들만 알고 집에서 자식을 속이고 마누라를 속이고
짐승처럼 욕망에 쫓겨 사는 인간들... 그런 작자들의 돈을 뜯는다고 해서 그리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안절부절 하지 못하던 아까의 그 사내가 떠올라 이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마누라가 무서우면 왜 숨겨 가며 몰래 바람을 피울까.
남자들이란... 하지만 돈이라면 자신의 육체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던지는 요즘의 젊은 여자들이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남자들의 가슴에 안겨 그 더럽고 추한 몸뚱이들을 흔들어대면서 그녀 [라이브카지노 asas7.com]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할까. 물질 만능이 가져온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제부터 그 벌레 같은 년놈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리라.
진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대략 스물 다섯개의 전화번호와 신상이 적힌 종이 쪽지를 소중하게 매만졌다. 하나에 삼백만원씩만 잡아도 스물 다섯
명이면 칠천오백만원의 거금이 생길 것이다. 그러다가 좀 맘씨 좋은 사람을 만나면 오백에서 천만원 까지도 액수를 높여 보리라. 돈 몇백만원에
함부로 신고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늘 고생만 시켰던 어머니. 그 돈으로 실패한 사업도 일으키고 못다한 효도도 해야겠다.
얼마를 걷던 진수는 한적한 골목길에 이르러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섰다. 소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보세요. 거기 박전무님 댁이죠?"
"네? 그런데요. 실례지만 누구 신지요?"
"예, 안녕하세요. 저 같은 회사에 일하고 있는 미스터 김입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 전무님 좀 바꿔 주세요."
"아, 그러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사십 줄쯤 돼 보이는 사내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 나왔다. 진수가 두 번째로 점찍은 모 대기업의 전무였다.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이봐요? 정신 차리고 잘 들으세요. 지금 나는 당신이 불륜을 저지른 정사 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봐! 그게 무슨 소리야? 테이프라니..."
"지난 달, 토요일에 들렀던 러브호텔을 기억하지요?"
"헉!"
"그날 방에서 비밀리에 찍은 비디오 테이프를 내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삼백을 준비해서 내일 종로 삼가 전철역 지하 매표소에서 기다리세요.
원한다면 테이프를 돌려주겠습니다. 저녁 여섯 시에 반드시 혼자 나와야 합니다."
"그... 그럽시다. 제발 테이프를 꼭 돌려주시오."
의외로 일이 쉽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바람을 피웠으니 어느 누구인들 테이프를 두려워하지 않으랴. 한심한 인간들... 다음날 저녁 여섯시,
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종로 삼가 전철역으로 향한 진수는 가방을 들고 서성이고 있던 사내를 발견하고 미소를 머금으며 다가갔다.
"물건은 준비되었습니까?"
"그러문요. 자 여기!"
순간, 손을 내미는 진수의 팔에 사내가 재빠른 동작으로 수갑을 채웠다. 잠복 중인 형사였다.
"앗! 어떻게 된 일이야! 이거 놔! 놓으라고!"
발악을 하는 진수에게 낯선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그래요, 이놈이 틀림없어요. 그날 그 호텔에서 방 안내를 했던 놈이. 이봐! 그 테이프는 어디에 있지?"
"감히 신고를 하다니... 약속이 틀리잖아?..."
"이봐! 이 미친 녀석아, 우린 부부야.. 나이 차이가 좀 나서 그렇지.. 넌 잘못 짚었던 거라구. 집에서 노부모님을 모시고 살기에 여관을
이용했을 뿐이야. 마누라가 워낙 소리를 잘 질러서. 젠장, 그것도 죄가 되나?"
"......"
모든 것을 체념한 진수는 순순히 형사들의 연행에 따랐다.
이 이야기는 경기도 인근에 있는 한 러브호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이다. 실제의 범인은 의외로 선한 마음씨를 가진 청년이었고 돈보다는 세상에
하나의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을 했다. 그리고 사건 당일 경찰의 잠복근무를 눈치채고도 도망가지 않고 순순히 연행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대낮에 러브호텔에 들리는 여관족들은 방에 들어서면 혹시나 숨겨 놓은 카메라가 있지나 않을까 살피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고 세상에
하나의 경종으로써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연출된 것이 아닌 실제의 생생한 포르노를 담은 그 많은 비디오 테이프들이
후에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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